융: 지금은 “스토리젠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아나운서 시절의 이야기도 궁금했어요. ‘말하기'를 항상 좋아했어요?
자영: 어렸을 때부터 꿈이 ‘아나운서’라고 답했어요. 말하는 걸 좋아하니까 “아나운서 해라" 툭툭 던지는 말을 받아들이고, 그 씨앗이 안에서 커졌던 거죠.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노래도 있잖아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국어국문학과와 방송 커뮤니케이션을 복수 전공했어요.
융: 어렸을 때부터 꿈이 명확한 편이었나 봐요.
자영: 어릴 때는 명확했는데 방송국에서 인턴을 하면서 방황이 시작됐어요.(웃음) 아나운서를 간접 체험한 직후부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혼란스러운 거예요. 본질적으로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은데, 아나운서는 작가가 있고, 이미 정해진 내용을 잘 전달해야 한다는 역할이 커서 기대와 달랐어요.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기자일까? 피디일까? 이런 고민도 많이 했고요.
고민이 많아서 방송국과 대기업에서 대외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경험을 많이 해야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방송국이 가장 생동감 넘치는 것 같았고,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마지노선을 정하고 도전했어요. “2년 후에도 아나운서가 안 되면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자” 마음먹고, 동생에게 돈을 빌려서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등록했어요.
그런데 딱 그날 대외 활동할 때 만났던 국장님이 전화가 와서 “광고 PD 인턴 해볼래?” 이러는 거예요. 원더보이즈 필름이라는 프로덕션 회사였는데요, 주변에서도 좋은 회사라고 그러고, PD도 해보고 싶었으니까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간다고 하고 아카데미를 취소했죠.
융: 아나운서와 PD. 갈림길에 섰던 순간이네요. 이게 하루에 일어난 일이었던 거죠?
자영: 네.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포기했으니 회사에 가서 끝장을 보려고 했어요. 열심히 일했어요. 아무도 안 시켰는데 현장에 있는 쓰레기 다 줍고, CF 감독님이 “쟤 누구냐?”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열정을 다했죠.
광고 PD는 업의 특성상 밤새는 일이 많았는데, 저는 밤새는 건 잘 못하거든요. 제가 그 직업을 잘 모르고 일을 시작한 거죠. 인턴을 하는 동안 주말 포함해서 집에 들어간 날이 손에 꼽혀요. 제 능력으로 환경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버텨보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두 달만에 다시 나가기로 결심했어요.
처음에 면접 볼 때 회사 대표님이 그랬거든요. “진짜 힘든데 버틸 수 있어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죠. 그런데 그만두겠다고 말하려니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대표님이 뭐라고 할까. 그럴 줄 알았다고 하실까. 고민하면서 말씀드렸더니 대표님이 그러셨어요.
“자영아. 넌 어디 가서도 잘 될 거야. 나중에 내가 다시 부를 테니 그때 같이 일하자.”
그때 정말 놀라고 감동받았죠. 그 전에는 성과를 내야지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보고 계셨던 거예요. 태도로써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아직도 이 대표님이랑 연락하며 지내요.
융: 태도로 인정받았다는 말이 멋지고 공감 가요. 경력이 쌓일수록 결정적인 순간에 차이를 만드는 건 실력보다도 태도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되거든요. 두 달 같이 일한 건데 인연이 참 신기해요.
자영: 그 고마운 말 덕분에 다시 힘이 생겨서 아나운서 학원을 다시 등록하고 열심히 했죠. 새벽 5-6시에 일어나서 신문 스터디하고, 연습하고.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열심히 하니까 배운 걸 실전에 쓰고 싶더라고요. 아직도 그 기분이 생각나요. 나는 준비가 됐다. 무대에 나가고 싶은데 왜 무대가 안 주어지는 걸까. 이런 마음이 드니까 오디션에 딱 붙더라고요. 열심히 해서 그런지 5개월 만에 데뷔를 하게 됐어요. 어릴 적 꿈을 이루고 처음으로 방송을 하게 됐는데… 그 일이 또 제가 생각한 거랑 좀 달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