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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나침반을 따라 

나만의 속도로 항해하는 모험가 임수민



쑤파클링 레모네이드 대표 임수민




인터뷰이: 임수민 | 인터뷰어: 허해찬 | 사진: 정혜윤 | 영상: 이다연

포토그래퍼, 세일러, 쑤파클링 레모네이드 대표, 요기니, 통영 숙소 운영자… 임수민을 설명하기엔 이름표 하나는 어림 없다. 그는 작은 취향 하나도 흘려보내지 않고, 매걸음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흡수해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항로를 개척하기까지, 그의 곁에는 늘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이게 정말 나다운가?’ 같은 질문의 대답으로 스트릿 포토그래피에 빠지고, 태평양을 건너고, 요트를 사고, 통영에서 레몬샵을 열었다. 멀리 돌아가는 듯 보였던 선택의 근거는 ‘나다움’이었고,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자신만의 항해를 펼치고 있다.



쓴 레몬으로 단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수민 님을 소개할 때 정말 많은 키워드가 떠올라요. 오늘은 어떻게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오늘은 쑤파클링 레모네이드 대표 임수민이에요. 사실 이 키워드로 소개하는 건 처음이에요. 쑤파클링 레모네이드 브랜드를 운영한 지도 3년이 됐고 제 본업이기도 한데, 작년까지는 스트릿 포토그래퍼라고 소개했거든요. 스트릿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던 시절의 시선과 가치들이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이에요.




스트릿 포토그래퍼에서 브랜드 대표로. 오늘은 소개가 달라진 이유가 있나요?

이제는 쑤파클링 레모네이드도 저의 아이덴티티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스트릿 포토그래피에서 다른 이야기들이 파생되어 나왔듯이, 쑤파클링 레모네이드도 이제 다른 걸 마구 낳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 브랜드의 가치가 ‘인생이 쓴 레몬을 주면 단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인데, 그 문장이 저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더라고요.




쑤파클링 레모네이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처음부터 ‘통영에 내려가서 브랜드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프리랜서 일을 할 때였는데, 일이 끊어지면 알바를 하거나 배라도 타서 고기 손질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내려왔거든요. 그게 통영의 라이프니까요. 


그런데 통영에 와보니 생각보다 더 여유롭고, 매일매일 보는 컬러들이 너무 싱그러운 거예요. 그림도 그려주고 싶고, 할리우드 영화처럼 예쁜 부엌에 레몬을 막 쌓아놓고 싶었어요. 그런데 레몬이 자꾸 썩고 파리가 꼬이더라고요. 그래서 도자기로 만들어봤어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저도 살래요” 한 거죠. 그게 50개, 100개, 500개가 되면서 '이거 브랜드 해야겠는데?' 했어요.




레몬 하나에서 시작해, 지금은 숙소까지 이어졌군요!

맞아요. 도자기 레몬을 만들다가 그릇에도 그려봤더니 잘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옷도 좋아하니까 레몬 색깔 옷도 만들고, 양말도 좋아하니까 양말로, 목걸이로. 이렇게 확장이 됐거든요. 지금 만들고 있는 숙소도 마찬가지예요. 저희 브랜드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랑 즐길 수 있는 게 뭘까 늘 고민하는데, 사람들이 저희 오프라인 숍에는 오는데 통영에는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더라고요. 왜 그런가 하니, 다들 마음에 드는 숙소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만들어야겠네’ 했죠. (웃음)




일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데, 힘들지는 않으세요?

친구들도 좀 쉬라고 하는데요. 저한테는 이게 쉬는 거예요. 애정에서 시작한 것들이기 때문에 억지로 한다기보다 재밌어요. 그렇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밥 먹고 자는 거 말고는 항상 일하고 있는데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인생이 준 쓴 레몬으로 단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사람. 이 문장은 임수민이라는 사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좋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통영에 내려와 브랜드, 숙소를 운영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면 임수민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표지판이라곤 주어지지 않는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왔을까.


‘나’라는 나침반을 따라, 자유롭게 돌리는 항로

다양한 정체성을 오가는 용기가 대단한 것 같아요. 이 키워드들의 시작은 어디였어요?

시작은 스트릿 포토그래피예요. 저는 국제학부로 대학교를 갔어요. 어렸을 때 외국에 살다 와서, 부모님이 “좋은 대학에 가려면 네가 갖고 있는 무기를 써야 된다” 했거든요. 제 무기는 영어였고요. 사실 저는 그때부터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미술 공부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니 무기가 될 수는 없었죠.


그래서 엄마가 약속했어요.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스펙을 위해 해야 되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내가 이걸 왜 해야 되지?' 하는 마음에 휴학을 했고 그때 들었던 교양 수업 하나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교양 수업이요?

'전쟁 그리고 흑백 사진'이라는 수업이었어요. 전쟁이랑 사진이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 1차 대전 때 사진 한 장 때문에 전세가 어떻게 기울었는지 같은 내용이었어요. 수업의 포커스는 전쟁인데, 저는 흑백 사진에 꽂힌 거예요. 사진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가왔어요. ‘나도 사람들에게 세계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하면서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국제학 아닌가요? (웃음) 그렇게 처음 사진을 찍게 됐어요.

처음으로 궤도를 튼 경험이었군요!


맞아요. 국제학부를 나오면 대기업을 가거나 국제 변호사나 외교관이 될 텐데, 갑자기 틀어버린 경험이 저한테 좋은 자극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학생들은 포멀하게 입고 다니는데 저는 청청으로 입고 다니기도 하고… 뭔가 이질감이 들곤 했거든요. 그런데 길거리에서 사람 사진을 찍을 때는 하나가 되는 느낌인 거예요. 그때부터 '이걸 하겠어!'하고 마음 먹었죠.




사진가와 스트릿 포토그래퍼는 어떻게 다른 거죠?

유명한 사진작가님들의 스튜디오에서 문하생으로 일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거예요. 자기가 직접 찍지 않고 어시스턴트를 시키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를 사진가가 아니라 스트릿 포토그래퍼라고 부르게 됐어요. 스트릿 포토그래퍼는 이야기를 담는 사람이지, 사진으로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이후로는 또다시 궤도를 틀어 요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셨잖아요. 세일러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스트릿 포토그래피를 재밌게 하고, 동기부여 강연으로 돈도 벌었어요. '궤도를 벗어나는 선택을 하는 용기'를 주제로 강연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언제 한 번, 제가 강연을 한 회사가 다단계 회사인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갔다가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하고 현타가 왔어요.


세바시에 출연했을 때는 갑자기 PD님의 연락처를 묻거나 연결해달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이라면 알려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왜 이 순간을 온전히 축하해주기보다 다른 목적이 먼저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어요. 그러던 중 강연에서 알게 된 항해하는 분이 태평양 항해를 한다고 해서, 그 배를 탄 거죠. 마치 절에 들어가는 심정으로요.



관계에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인간관계니 다단계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너무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진짜 두려워할 만한 바다에서 강인해지자는 마음이었어요. 거기서도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만요. (웃음)









첫 항해는 어떠셨어요?

저는 사실 요트에는 관심도 없었어요. 세일러라는 꿈도 없고, 그냥 바다를 보고 싶어서 갔는데, 그 배에도 사람이 타 있던 거죠. 사람을 피해서 갔는데 말이에요. 항해도 힘들었고 요트가 더 싫어졌어요. 그런데 그때, 다른 배를 타고 있던 채(지금의 남편)를 만났어요.




채 님을 만나서 계속 요트를 타게 되셨군요!

남편은 원래 세일러고, 저는 저 사람이 너무 좋은데 저 사람은 요트밖에 모르는 거예요. 어떡해요. 나도 요트를 좋아해야지. 그리고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은 너무 슬프잖아요. 대화를 하다 보니까 내가 경험했던 건 진정한 세일링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이 사람이랑이라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마주하기 싫었던 한계를 극복하고자 요트를 사게 됐어요.




국제학부에서 스트릿 포토그래퍼, 강연, 세일러까지…수민 님은 여러 일들을 거쳐오면서 지키고 싶은 기준이 있나요?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 타인의 시선과 기준으로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사람들이 보기에 그러지 않을까’ 이런 마음 없이 ‘이게 정말 나다운가?’가 제일 중요했어요.

 



‘처음이 어렵다’는 말에 빗대어보면, 궤도를 한 번 틀어본 사람은 다음 방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맞지 않는 학과를 벗어나 스트릿 포토그래퍼가 되고, 도망쳐 왔지만 싫었던 바다를 극복하려 요트를 샀다. 겉보기엔 실패였던 선택에서, 임수민의 정체성은 되려 강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찾아온 통영

서울에서의 생활을 두고, 통영으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채랑 롱디를 오래 했어요. 채는 세일러라 바다 근처에 살아야 하고, 저는 그때 직장을 다니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프리랜서가 돼서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디서든 일해도 되니까요. 그때 채가 준 선택지가 여수, 부산, 통영이었고, 저는 당연히 통영이었어요.




다른 선택지는 왜 아니었어요?

여수랑 부산은 도시잖아요. 서울이라는 도시에 지쳐 있었거든요. 속도가 빠른 건 좋은데, 모두가 자기의 속도로 그렇게 빠르게 사는 건지, 뭔가에 쫓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도 그러고 있고요.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리고 수리 때문에 내려가고 싶었던 것도 커요. 서울에서 수리를 두고 나갈 때마다 채광이 너무 안 드는 집에 가둬 두고 오는 기분이었어요. 햇빛이 있는 집을 주고 싶은데, ‘서울에서 채광 좋은 집을 언제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좀 어려울 것 같았어요.




통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상이 있나요?

수리랑 채랑 셋이 산책 가는 게 제일 좋아요. 어디든 예쁜 곳이 너무 많고, 수리를 풀어놔도 뭐라 할 사람도 없는 곳이 정말 많아요.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수리를 보면 너무 행복해요.

 



통영에서의 삶은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파트너 채를 위해, 반려견 수리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빠른 속도로 변해가며, 뒤처질까 겁을 주는 세상. 그러나 임수민의 선택과 오늘을 보면 뒤처짐이란 내 안의 허상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된다.







내게 맞게, 제대로 채우는 공간

합정 전셋집도, 통영 집도, 지금 만들고 있는 숙소도. 다 직접 리모델링하셨잖아요. 공간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것 같아요. 수민 님에게 공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밖에서 소란스럽고 힘들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그 안에서만큼은 나답게 있을 수 있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공간이 하나라도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집 꾸미기에 진심인 것 같아요.




처음으로 공간을 직접 꾸민 건 합정 전셋집이었나요?

맞아요. 처음 들어갔는데 노란색 판과 벽지가 너무 싫은 거예요. 사람들이 전셋집은 아까워서 안 꾸민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됐어요. 제가 사는 2-3년 동안은 안 아깝냐고요. 집주인이랑 합의 보고 직접 꾸몄어요. 처음으로 저만의 공간이 생기다 보니까, 제가 색깔을 엄청 좋아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통영으로 이사 오면서 집도 리모델링 하고, 지금은 숙소도 만들고 계시지요?

맞아요. 사람들이 ‘운하 여관’은 언제 만드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저는 빨리 오픈할 생각이 없어요. 1층을 어떤 색깔로 채울지 아직 아이디어가 없는데 빨리 서두르고 싶지 않아요. 언젠가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올 때, 그게 딱 맞는 선택이라 생각해요.




공간을 꾸리는 데에도 수민 님만의 속도가 느껴져요.

이건 항해하면서 배운 인생의 어떤 철학인데요. 한 번은 채랑 정해진 시간에, 어떤 섬에 도착해야 되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런데 바람이라는 게 우리 맘 같지 않잖아요. 목적지나 시간,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둘 다 원한다 해도 어쩔 수 없죠. 그래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외에는 너무 컨트롤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컨트롤하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가 완공일이에요.



 

임수민이 공간을 대하는 방식은 그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 빨리, 많이가 아니라 내게 맞게, 제대로. 다양한 색깔로 가득한 그의 공간에서 ‘나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흑백 필름에 담긴 ‘나’라는 중요함

수민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유난히 흑백 사진이 많은 것 같아요.

흑백 사진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컬러 사진은 그 장면을 직접 보는 것 같지만, 흑백은 그보다 조금 멀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 감정이 너무 좋았어요.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있나요?

디지털로 사진을 찍으면 찍고 다시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필름은 다시 못 보니까 신중하게 찍게 되고, 그 상황에 집중을 하게 돼요. 그리고 흑백 필름은 직접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이 있는데, 암실에서 작업하는 그 시간을 너무 좋아했어요. 암실에 들어가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연습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요?

처음 필름 현상을 할 때, 2주 동안 열심히 찍은 사진을 제가 잘못해서 다 백지로 만들어버렸어요. 사진이 다 지워진 거예요. 사람들이 “아깝다”, “괜찮아” 위로를 하는데, 저는 그 상황이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잘 해야 나오는 거구나’ 하면서 책임감이 느껴졌거든요. 셔터만 누르면 되는 게 아니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하는구나 싶었죠. 과정 전체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 내가 되게 중요해지는 기분. 그게 너무 좋았어요.




정말로요. 오히려 아날로그 한 과정에서 사람의 역할이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수민 님은 AI 시대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요?

들어오는 다양한 제안들을 보면서 변화를 실감해요. 특히 출판 관련 제안을 많이 받는데, 제 인생을 AI로 정리해 목차와 챕터 한 장을 써서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어요. “당신의 인생을 이렇게 풀어보면 어떨까요?”라는 식의 제안이었는데요, 그런 글들을 읽어보면 어딘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내 삶이 하나의 틀 안에서 정리된 느낌이 들기도 해서 조금 낯설고 혼란스러웠어요. 많은 일들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수민 님은 AI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그래도 분명 AI가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방향을 잡아주는 데도 꽤 유용하고요. 다만 그 과정에 익숙해지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약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생각하는 노동을 대신 맡기기보다는, 분석적인 사고를 확장해 주는 도구로 쓰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결론은 내가 도출해야 하는 거니까요.



 

무슨 일을 하든, 그 안에 나로서 존재하고 참여하는 것. 임수민이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는 무엇보다 ‘나 자신’이 우선한다. 사진 한 장을 찍든, AI로 글을 쓰든. 내 삶의 한 장면이라면,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지 떠올려 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항해

한 사람이 지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길을 걸어오셨어요. 지금 수민 님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어디인가요?

지금은 통영에서 다양한 것들을 나누려 하고 있어요. 숙소를 운영하면서 사람들한테 통영을 더 많이 알리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고요. 그리고 제 책을 너무 쓰고 싶은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 쓰고 있어요. 책 작업도 더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의도적으로 느린 삶을 꿈꾸는 다능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내가 선택한 게 맞는지 그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좋아 보여서 하는 것도, 내가 정말 좋아서 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인지를 구분해 보세요. 그 사이 뭔가 불만족스러운 게 있다면,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 수 있거든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해 보세요.






임수민을 만나기 전, 몇 개의 키워드 중 무엇을 다뤄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임수민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그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태도로 귀결됐다. 주어진 세상에 적응하기 전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인지 먼저 묻고 움직이는 것. 나다움으로 돌아가는 질문이 쌓여, 그만의 항로를 그려왔다.


우리는 종종 나를 뭐라고 설명할지 고민한다. 나를 알기 쉽게 정의하고 보여줘야 이 세상이 나의 쓸모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임수민의 삶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하나로 정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용감하게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쫓기지 않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강함이 있다. 이 느낌은 주변 사람에게도 닿아,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 아직 모르는 상태를 견딜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의 선택들은 늘 조금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가장 자신다운 방향으로 이어졌다. 빠르게 달리는 대신, 제대로 향했다.


임수민의 이야기를 듣고 숨 가빴던 언제가 떠오른다면 잠시 눈을 감고 나에게 물어보자. 


“이게 정말 나다운가?”







Behind Story


4월 어느 날,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커다란 가방 가득 레몬 아이템들을 들고 온 임수민을 만났다. 레몬 도자기부터 접시, 노란 양말까지. 쑤파클링 레모네이드가 한 사람 + 가방이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우리가 예약한 스튜디오는 임수민이 가진 싱그러움을 담기엔 어딘가 아쉬웠다. 레몬샵의 컬러, 임수민의 자유로움 모두 이 스튜디오와는 다른 생기였다.


카메라를 몇 차례 들어볼 필요 없이, 융과 다연은 얼마 뒤의 통영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이번 매거진에는 통영에서 만난 임수민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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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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