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배운 기업가 정신
융: 각자 해온 고민의 총량이 엄청났을 것 같아요. 그리고 몇 년 동안 두 분 다 실패를 많이 해본 거예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기업가 정신이 키워진 상태로 본질적인 가치관이 맞는 상태에서 만나서 두 사람이 만남으로써 감자밭이 시작된 게 재밌고 신기해요.
아까 동녘님이 “꽃 필 때 활력이 엄청나다"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모든 게 다 에너지라고 생각하는 데 두 분은 자연을 곁에 두고 살아서 이걸 본능적으로 예민하게 느낄 것 같아요. 사람들은 머리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교, 회사, 이런 빌딩 안에서 배우고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제가 과학자, 자연학자들의 책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제일 좋아하는 인물도 칼 세이건, 천문학자예요. 그 이유는 어떤 본질을 파고 들어서 자연에서 배운 내용을 말하는데 저는 그게 다 삶에 빗대어 보였어요.
브랜딩도 결국 자기다움이고,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 진심이어야 지속성이 생기는데 두 분은 그 여러 가지 정신을 자연에서 습득하신 것 같아요. 너무 인상적이라 말이 좀 많아졌습니다. 정원에 꽃도 희귀종을 심으셨잖아요. 그건 왜 그런 거예요?
동녘: 제가 고흐를 되게 좋아해요.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면 해바라기가 아닌 것처럼 생긴 둥근 해바라기가 있거든요. 그게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 품종을 찾아보니까 이름도 테디 베어인 거예요. 이름조차 귀여운 그 품종을 찾기 위해 미국 사이트부터 다 뒤졌어요.

융: 아, 디깅의 힘. 이게 바로 디깅이죠.
동녘: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해바라기 색은 세 가지예요. 잎이 노란색. 줄기가 초록색. 가운데 씨가 검은색. 꽃잎이 일주일밖에 안 가요. 해바라기가 피고 일주일 뒤에는 밭에 초록색, 검은색만 남겠죠. 그럼 너무 칙칙하잖아요.
융: 정원 꾸밀 때 이렇게 색깔로 떠올리는 거 너무 재밌네요.
동녘: 미소와 제가 본질적으로 가져가고 싶은 가치가 ‘다양성'인데 이걸 사람들이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게 꽃이었어요. 그래서 해바라기 품종을 15가지 정도 심었어요. 도시에서는 화단에 보면 꺾지 마세요. 들어가지 마세요. 이렇게 적혀 있잖아요. 근데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어떤 감흥이 있을까 싶어서 저희는 꽃 따러오는 밭이라고 해서 ‘꽃따밭'이라고 지은 거예요.
융: 밭을 도화지라고 표현하시잖아요. 고흐처럼 페인팅을 한 건데 밭에다가 꽃으로 페인팅한 거예요. 두 분이 생각하는 스케일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직접 뭔가를 만들어보는 경험이 전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사람들이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농부는 애초에 생산자인 거예요. 그냥 농부는 다 생산자고. 생산자가 곧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정말 작은 걸 만들어봐도 두려움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난 이런 걸 만들 수 있구나' 이런 마음이 생기는데. 두 분은 1,500평의 입체적인 공간에다가 농작물이랑 꽃으로 나의 그림을 펼친 거죠.

동녘: 전 정원이 디자인의 끝판왕 같아요. 1년에 한 번 보기 위한 색감을 위해 시간을 들여서 그 공간을 계속 가꾸는 작업이 멋있어요. 그리고 솔직히… 사과 농사짓다가 꽃 농사 지으니까 너무 편한 거예요. 사과는 한 번 열리면 6개월 동안 아기 다루듯이 계속 케어해줘야 해요. 그런데 꽃은 악단의 지휘자처럼 시기를 다르게 꽃 피울 수도 있어요. 사과에 비하면 재밌고 편해요.
미소: 꽃 심는 것도 사실… 땅에 바로 심는 게 아니라 어떤 씨는 깨알보다 작아요. 그러면 1센티짜리 포트에 그 깨알보다 작은 씨를 하나씩 넣어야 해요. 저는 ADHD가 있어서 집중을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동녘이 혼자 일주일 넘게 4만 개의 씨를 다 넣고, 하우스에서 길러요. 물을 매일 줘서 한 달 동안 기르고 포트에서 묘가 자라면 그걸 땅에 옮겨 심어야 해요.
융: 으아. 진짜 부지런해야 하고, 끈기, 집요함 다 필요하네요. 스타트업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이 농사를 짓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길 것 같아요.
동녘: 농작물은 농사꾼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고, 에너지를 들인 작물은 그만큼의 에너지를 뿜어내요. 해바라기가 처음 폈을 때 깜짝 놀랐어요. 다 펴 있을 때 에너지가 엄청나요.
융: 안 그래도 확 피는 꽃인데, 진짜 그럴 것 같아요. 원하는 꽃을 꺾어서 가져갈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도시인들의 로망인 것 같거든요. 게다가 다 처음 보는 꽃이고. 그 경험 자체가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동녘: 가격도 저렴하고. 남자 친구들이 포인트 따기도 좋고(웃음). 꽃다발 서비스를 한 사람은 무조건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무조건 올리니까 피드가 쭉쭉 차는 거예요.
융: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감자 빵 이전에 꽃따밭도 엄청난 상승 곡선이 있었네요. 두 분 이야기 듣다 보니까 제가 아끼는 책 속의 구절이 떠올라요. 식물학자 호프 자런이 쓴 <랩 걸>에 이런 말이 나와요. 우리는 학교와 사회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어려운 용어를 배우는데 시간을 많이 쓰는데, 정작 우리 집 앞에 펴 있는 꽃이나 나무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고요. 제가 그 구절을 읽고 좀 충격을 받았거든요. 사실은 이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지구에 한 번 왔다가면서 내 앞에 피어난 꽃 이름도 모르다니.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에게서 배울 점이 너무나 많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배운 걸 또 나다운 방식으로 펼쳤을 때 이렇게 멋진 과정을 그릴 수도 있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셔서 너무 좋습니다.

미소: 저는 춘천이지만 도시에 살았거든요. 그… 무 위에 대가 있잖아요. 그게 말리면 시래기래요. 저는 그걸 몰랐거든요.
융: 저도 지금 알았는데요…
미소: 대학을 나와도 그걸 모르는 게 충격적인 거예요.(웃음) 감자 씨앗이 감자인 걸 모르는 사람도 많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면요. 저도 첫 해에는 제가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신기했어요. 감자가 감자 씨구나. 이게 시래기였구나. 둘째 해에는 봄이랑 가을이 너무 다른 거예요. 도시에 살 때는 봄, 가을 옷이 좀 비슷하잖아요. 크게 차이를 못 느꼈거든요. 이제 3년 차가 되니까 180도 달라요. 봄은 살아나는 계절이에요. 생명의 시작. 가을은 서서히 죽어가는 계절이에요. 기존에는 날씨만 생각하고 생명의 시작과 죽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농촌에 있으면 바람소리가 달라요. 봄비랑 가을비도 다르고요.
동녘: 이걸 모를 수도 있구나. 봄비에는 산뜻함이 있죠.
미소: 저는 평생 모르고 살았어요. 시기별로 꽃도 다 다르고, 그런 자연의 섬세한 디테일이 점점 보이는 거예요. 제가 이걸 느끼고 나서 동녘이에게 그랬어요. 이걸 미리 느꼈다면 20대 때 디자인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요. 남편이 디자인하는 거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천부적이지?’ 생각했거든요. 이 친구는 그냥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느껴서 시야가 다른 거예요.
융: 설명을 듣는데 뭔가… 아름다워요.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는 시선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어떤 느낌이 드냐면요. 자연에서 느낀 걸 얘기하고 있는데, 시인의 언어 같아요. 시인의 시선이라는 게 작은 것에 예민하고, 사람들이 모르는 변화를 감지하잖아요. 아름답게 들려요.
미소: 농촌을 겪어 보니까 정말 아름다워요. 동녘이는 개구리라면 저는 겨우 올챙이에서 앞다리 정도 나온 사람인데요.(웃음) 앞다리 나온 사람이 올챙이 마음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자연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1년, 1년 삶이 달라요.
동녘: 소중함의 섬세함이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봄이라서 잎사귀가 다 자라고 있잖아요. 매년 같은 자리에 잎사귀가 달리는데, 실은 매년 다른 잎사귀가 달린다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지? 그러면서도 매년 바뀌는 환경에 똑같이 아름다움을 뿜어낸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요?
융: 저도 최근에 그걸 생각한 적 있어요. 많은 걸 잃었다가 다시 꽃이 눈에 들어올 때쯤에요. 그래서 자우림 ‘스물다섯스물하나' 가사를 좋아해요.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미소: 눈앞에 기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기적인지 잘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이게 되게 신기한 일인데 왜 이걸 몰랐지?
융: 너무 좋아요. 저는 지금도 엄마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경험이 있어요. 도시에서 살았지만 몇 년 동안 매 주말마다 강원도에 내려갔어요. 나비 도감을 달달 외우고, 6학년 때는 한달간 전교생이 8명인 분교를 다녔어요. 저의 감수성이나 크리에이티브가 자연에서 뛰어놀면서 배운 게 진짜 많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더 깨달았어요. 제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자연에서 시간을 보낸 경험이 엄청난 선물이고 경험이었다는 걸요.
동녘: 감수성 학원은 없잖아요. 자연이 최고의 감수성 학교예요. 도감도 보면, 다른 점을 알아차려야 구분을 하잖아요. 그런 디테일을 보는 습관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감수성으로 연결이 되고요.
융: 크. 디테일을 보는 습관이 삶을 윤택하게 한다. 또 명언 나왔네요. 우리 이야기가 굉장히 철학적으로 흘러가는데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