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스어스, 길현희
글: 이슬기 • 인터뷰이: 길현희
할 수 있는 시대에 하지 않는 선택
10년째 자리를 지킨 제로 웨이스트 카페, 얼스어스
때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결정은, 하는 결정보다 훨씬 견고하다. 안 하는 것은 이미 흐르는 기류에 올라타는 게 아니라 그 흐름의 힘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세를 거슬러 명확한 목적을 향하는 연어처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물길을 만든다.
연남동과 서촌에 1호점과 2호점으로 자리한 얼스어스는 10년째 제로 웨이스트 카페로 운영 중이다. 얼스어스에는 일회용 컵과 냅킨, 일회용 빨대가 없다. 포장 용기가 없으니 당연히 배달 서비스도 운영하지 않는다. 브랜딩 차원에서의 차별성이라거나 입소문을 위해 만든 컨셉이 아니다. 이 원칙은 지난 10년간 숱한 고비와 위기 속에서도 지켜온 브랜드의 뿌리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카페 트렌드와 유행은 빠르게 바뀌어 왔다. 그때마다 얼스어스는 유행에 편승하거나 대응 하기보다 스스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남들과 다른 속도, 다른 리듬이 생겼다.
About Earth Us
Started 2017년
Base 서울 연남동 (1호점) & 서촌 (2호점)
Category 제로 웨이스트, 카페
Concept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며, 맛과 서비스의 본질을 지키는 카페
About Earth Us
Started 2017년
Base 서울 연남동 (1호점) & 서촌 (2호점)
Category 제로 웨이스트, 카페
Concept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며, 맛과 서비스의
본질을 지키는 카페
Scene 01. The First Spark
처음 불이 켜진 순간
얼스어스 길현희 대표는 대학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다. 4학년이 됐을 때, 그는 졸업하기 전에 전공을 살려 의미 있는 일 하나쯤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책 <40세 정신과 영수증>의 저자이기도 한) 카피라이터이자 네이미스트 정신의 선배 특강으로 진행한 ‘이름 짓기’ 수업을 듣게 됐는데, 그때 얼스어스(Earth Us)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지구를 위하는 일이 곧 우리를 위하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이름. 평소 환경 감수성이 높은 그였다.
이름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일종의 사회운동을 하고 싶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대학 시절 6년 내내 카페 아르바이트로 커피를 내려왔기에, 자신의 관심사인 커피와 환경 키워드를 접목시켰다. 당시에는 카페 안에서도 테이크 아웃용 일회용 컵을 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지점에서 현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다. 바로 일회용 컵이 아닌 예쁜 세라믹 잔이나 유리컵에 음료를 담아주는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 그렇게 감도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며 SNS에 사진과 함께 생각을 기록해 올리기 시작한 게 첫 시작이다.
“학생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내가 만든 커피 드시는 분들은 진짜 행운아다’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광고 회사에 입사한 후로는 카페 투어를 하기보단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이때부터 본격 팔로워가 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매거진에서 그에게 ‘홈 카페 바리스타’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 이를 계기로 ‘홈 카페’라는 개념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디저트 하나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예쁘게 먹을지 궁리할 만큼 먹는 일에 있어 진심을 다하던 그에게 커피를 내려마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카페 경력도 있지 않았던가.
“학생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내가 만든 커피 드시는 분들은 진짜 행운아다’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웃음). 제가 맛있게 먹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커피 얼음이 덜 녹는 지점을 계산해서 서빙한다거나, 손님이 주문 후 화장실에 가면 손님이 나오는 타이밍에 바로 푸어링 해서 전달하는 식으로 항상 맛있게 먹는 법을 계산하며 일했어요.”
스스로 맛있게 먹는 사람이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는 모습이 담긴 1분.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매일 게시물을 올린 지 한 달째에 모카 커피 제조 영상 하나가 터졌다. 팔로워 수가 수천이 되더니 금세 몇 만을 넘었다. 그 무렵 SNS에서는 ‘홈 카페'라는 단어의 의미가 재해석 되고 있었다.
“원래는 홈 카페라고 하면 집에서의 어떤 공간, 구역을 보여주는 의미였는데, 어느 순간 어떤 주제를 가진 콘텐츠 자체가 된 거예요. 그렇게 홈 카페 콘텐츠가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그 변화의 중심에 현희가 꾸준히 올려온 영상들이 있었다.
“학생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내가 만든 커피 드시는 분들은 진짜 행운아다’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광고 회사에 입사한 후로는 카페 투어를 하기보단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이때부터 본격 팔로워가 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매거진에서 그에게 ‘홈 카페 바리스타’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 이를 계기로 ‘홈 카페’라는 개념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디저트 하나도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예쁘게 먹을지 궁리할 만큼 먹는 일에 있어 진심을 다하던 그에게 커피를 내려마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카페 경력도 있지 않았던가.
“학생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내가 만든 커피 드시는 분들은 진짜 행운아다’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웃음). 제가 맛있게 먹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커피 얼음이 덜 녹는 지점을 계산해서 서빙한다거나, 손님이 주문 후 화장실에 가면 손님이 나오는 타이밍에 바로 푸어링 해서 전달하는 식으로 항상 맛있게 먹는 법을 계산하며 일했어요.”
스스로 맛있게 먹는 사람이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는 모습이 담긴 1분.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매일 게시물을 올린 지 한 달째에 모카 커피 제조 영상 하나가 터졌다. 팔로워 수가 수천이 되더니 금세 몇 만을 넘었다. 그 무렵 SNS에서는 ‘홈 카페'라는 단어의 의미가 재해석 되고 있었다.
“원래는 홈 카페라고 하면 집에서의 어떤 공간, 구역을 보여주는 의미였는데, 어느 순간 어떤 주제를 가진 콘텐츠 자체가 된 거예요. 그렇게 홈 카페 콘텐츠가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그 변화의 중심에 현희가 꾸준히 올려온 영상들이 있었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왜 싫어하는지를 파고 들었더니,
거기에 정답이 있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향한 흥미가 불 붙기 시작한 한편, 본업인 광고 회사에서의 일은 불씨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제 원래 꿈은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제게 광고 회사는 그렇진 않았어요. 아무래도 소비를 독려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현희는 생각했다.
‘이참에 일회용품을 안 쓰는 카페를 내가 직접 차리면 어떨까?’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마음을 먹고선 한두 달만에 회사를 관뒀어요. 동시에 부동산 발품을 팔며 지금의 연남동 1호점 자리를 발견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했지만,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물론 사회 초년생에 대출도 받아야 했으므로 부담이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이뤄야 할 목표도 없었다. 본가에서 지냈기에 기본 생활비가 큰 편도 아니었다. 돌아보니 그 조건이 용기가 됐다고 했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정 후 공간을 계약하고 나니, 카페를 구성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티슈 대신 손수건을 여러 장 구비하고, 예쁜 컵과 접시를 마련했다. 음료 메뉴 구성도 단번에 이뤄졌다. 지난 아르바이트 경력뿐만 아니라 홈 카페 콘텐츠를 만들어온 시간이 메뉴 기획에 토대가 되어줬다.
다만 디저트 메뉴는 고민이 됐다. 현희 스스로가 디저트를 잘 찾아 먹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유명 구움 과자 가게로부터 납품을 받을까 했으나, 최소 수량이나 일회용 박스에 담겨 유통되는 과정 등 내키지 않는 게 많았다. 현희는 늘 그래왔듯이, 막히는 문제 앞에서 포기하는 대신 스스로 방법을 찾았다. 이번엔 독학으로 디저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 즉시 유튜브를 떠돌며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레시피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왜 평소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밀가루나 계란 맛이 강한 경우가 싫었던 것. 현희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료를 덜거나 더하며 레시피를 개발했고, 그랬더니 손님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얼스어스는 예상치 못하게 디저트 맛집으로 소문나기 시작해 하루 30개를 팔고도 모자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왜 싫어하는지를 파고 들었더니, 거기에 정답이 있었어요."
Scene 02. Building a Universe
세계관을 설계하는 일
처음부터 브랜드의 방향성을 분명히 세우고 지켜 나갔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손님들이 함께 세계관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지금은 얼스어스의 핵심인, ‘번거로운 포장법’은 원래 한 손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입소문을 탄 얼스어스의 케이크를 포장해 가려는 손님들에게 몇 번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 포장이 어렵다’는 말을 전하자 한 손님이 집에서 냄비를 챙겨와 포장을 요청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게 너무 인상적이라 현희는 SNS에 찍어 올렸고, 그 사진이 일파만파 퍼지며 얼스어스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덕에 독특한 문화가 생긴 것이다. 양은냄비, 김치 통, 반찬 통, 웍…. 포장을 해간 사람들의 후기가 알려지면서 언론에도 소개됐다.
“저희가 만족시켜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기 때문에
그 손님과 우리가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못하고 있나’ 하는 의심은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얼스어스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정제된 환경 메시지가 아니라,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들이 올라왔다. 그날 생각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식으로. 한번은 어느 블로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 케이크, 쓰레기 안 남기려고 일부러 부스러지지 않게 만들었겠지?’
“사람들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줄은 몰랐어요. 그런 의도를 담은 적은 없는데(웃음).”
현희는 손님들에게 얼스어스 필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 드러내지 않아도, 오히려 ‘이래서 그랬을 거야’하고 맥락을 만들어주는 사람들. 수많은 의미와 가치가 손님들에 의해 발견되고 더해졌다.
그러나 모두가 얼스어스의 방향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블로그나 SNS에는 불편하다거나 얼스어스의 의도를 왜곡하는 글이 적히기도 했다.
“맨 처음에는 진짜 총알받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회사를 다닐 적에도 피드백은 많이 받았지만, 회사에선 정제된 형태로 오잖아요. 장사를 하면서는 남의 일기장에 가감 없이 적힌 걸 그대로 보는 것 같더라고요. 되게 생경하고 상처가 되기도 했어요.”
현희는 부정적인 피드백 가운데에서도 적용할 부분과 굽히지 않을 부분을 구분했다.
“저희가 만족시켜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기 때문에 그 손님과 우리가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못하고 있나’ 하는 의심은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필요한 피드백은 고치고, 그게 아니라면 매달리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뭐든지 척척 결정하며 낙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위기 앞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기는 코로나 시기에 닥쳐 왔다. 2019년 말부터 2022년 초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영업자들은 배달 없이는 장사를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별도의 포장 용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배달 서비스도 하지 않는 얼스어스의 입장에선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얼스어스의 서촌점이 문을 연 지 3일만에 코로나로 인한 무기한 영업 정지가 시작됐다.
현희는 어쩔 수 없이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는 대신, ‘버티기’를 택했다.
수익이 없어 월세가 밀렸고, 직원들에겐 양해를 구하며 무급 휴가를 부탁해야 했다.
건물주들에게는 그냥 솔직히 말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쓰레기를 막 배출하면서 카페가 잘 되더라도,
그게 저를 행복하게 만들 순 없으니까요.
내가 행복해야 오래 할 수 있잖아요.
세상의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했어요.
오히려 새로운 메뉴 개발에 박차를 가했죠.”
그렇게 디저트 라인업이 기존 두세 가지에서 네다섯 가지로 늘어났다. 신메뉴가 각광 받으며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출이 회복되자 현희는 가장 먼저 무급 휴가를 떠났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사실 현희는 위기 속에서 무작정 버티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끊어내야 할 타이밍과 기준 역시 명확했다.
얼스어스 서촌점이 문을 연 시기즈음, 당시 얼스어스는 부산에서도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희는 일주일에 날을 정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매장을 컨트롤 했다. 부산점은 규모가 꽤 컸음에도 제법 잘 굴러갔다. 코로나 시기였음에도 매출은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현희가 1년만에 이곳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매출이 아닌 다른 데 있었다.
“서울에서는 제가 스텝들과 붙어서 일하며 라포 형성이 잘 됐는데, 부산에서는 그게 어려웠어요.
스텝들과 제가 동화 되지 않으니까 일을 지속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에게 지속 가능성이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케미스트리를 뜻하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영역.
현희는 이 본능적 직관을 말로 설명하긴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를 잘 넘긴 2023년. 그는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간 얼스어스가 걸어온 카페의 길과는 조금 다른, 베이커리 중심의 ‘얼스케이크베이크샵’을 성수에 연 것이다. 그동안의 얼스어스는 손님과의 거리가 가깝고 구석 구석 주인장의 손이 타지 않은 곳이 없었다면, 얼스케이크베이크샵은 훨씬 더 큰 규모에 스텝과 손님간의 거리가 먼 공간으로 꾸몄다.
당시엔 ‘런던 베이글 뮤지엄’과 같은 규모 있는 베이커리샵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1년도 안 돼서 가게 문을 닫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케팅 측면에서 안일하게 생각한 지점이 있었다고 했다.
“얼스어스 연남점이나 서촌점, 부산점. 모두 주변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어요. 그런데도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보니까 제가 마케팅을 세심하게 할 생각을 못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큰 공간을 오픈 할 땐 좀 달랐어야 했는데, 이전 방식을 그대로 했던 거죠.”
현희는 이전 매장들을 오픈할 때처럼 홍보에 적극적인 힘을 쏟지 않았다. 가게 오픈 일주일 전 SNS에 오픈 예고 소식을 올린 게 전부였다.
“오픈 첫 날 직감 했어요. 이 정도 규모인 공간에 손님이 이 정도라면, 앞으론 더 어렵겠다.”
그렇게 1년도 채 되지 않아 현희는 그 공간을 스스로 접었다.
사업 7년차. 코로나도 극복한 그에게 찾아온 첫 실패였다.
그러나 그 실패가 얼스어스를 주저앉힐 명분이 되진 못했다. 그에겐 여전히 함께 걸어나갈 동료들이 있었으니.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왜 싫어하는지를 파고 들었더니,
거기에 정답이 있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향한 흥미에 불이 붙기 시작한 한편, 본업인 광고 회사에서의 일은 불씨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제 원래 꿈은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제게 광고 회사는 그렇진 않았어요. 아무래도 소비를 독려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현희는 생각했다.
‘이참에 일회용품을 안 쓰는 카페를 내가 직접 차리면 어떨까?’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마음을 먹고선 한두 달만에 회사를 관뒀어요. 동시에 부동산 발품을 팔며 지금의 연남동 1호점 자리를 발견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했지만,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물론 사회 초년생에 대출도 받아야 했으므로 부담이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이뤄야 할 목표도 없었다. 본가에서 지냈기에 기본 생활비가 큰 편도 아니었다. 돌아보니 그 조건이 용기가 됐다고 했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정 후 공간을 계약하고 나니, 카페를 구성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티슈 대신 손수건을 여러 장 구비하고, 예쁜 컵과 접시를 마련했다. 음료 메뉴 구성도 단번에 이뤄졌다. 지난 아르바이트 경력뿐만 아니라 홈 카페 콘텐츠를 만들어온 시간이 메뉴 기획에 토대가 되어줬다.
다만 디저트 메뉴는 고민이 됐다. 현희 스스로가 디저트를 잘 찾아 먹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유명 구움 과자 가게로부터 납품을 받을까 했으나, 최소 수량이나 일회용 박스에 담겨 유통되는 과정 등 내키지 않는 게 많았다. 현희는 늘 그래왔듯이, 막히는 문제 앞에서 포기하는 대신 스스로 방법을 찾았다. 이번엔 독학으로 디저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 즉시 유튜브를 떠돌며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레시피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왜 평소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밀가루나 계란 맛이 강한 경우가 싫었던 것. 현희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료를 덜거나 더하며 레시피를 개발했고, 그랬더니 손님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얼스어스는 예상치 못하게 디저트 맛집으로 소문나기 시작해 하루 30개를 팔고도 모자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왜 싫어하는지를 파고 들었더니, 거기에 정답이 있었어요."
Scene 02. Building a Universe
세계관을 설계하는 일
처음부터 브랜드의 방향성을 분명히 세우고 지켜 나갔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손님들이 함께 세계관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지금은 얼스어스의 핵심인, ‘번거로운 포장법’은 원래 한 손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입소문을 탄 얼스어스의 케이크를 포장해 가려는 손님들에게 몇 번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 포장이 어렵다’는 말을 전하자 한 손님이 집에서 냄비를 챙겨와 포장을 요청하는 경우가 생겼다. 그게 너무 인상적이라 현희는 SNS에 찍어 올렸고, 그 사진이 일파만파 퍼지며 얼스어스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덕에 독특한 문화가 생긴 것이다. 양은냄비, 김치 통, 반찬 통, 웍…. 포장을 해간 사람들의 후기가 알려지면서 언론에도 소개됐다.
“저희가 만족시켜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기 때문에
그 손님과 우리가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못하고 있나’ 하는 의심은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얼스어스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정제된 환경 메시지가 아니라,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들이 올라왔다. 그날 생각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식으로. 한번은 어느 블로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 케이크, 쓰레기 안 남기려고 일부러 부스러지지 않게 만들었겠지?’
“사람들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줄은 몰랐어요. 그런 의도를 담은 적은 없는데(웃음).”
현희는 손님들에게 얼스어스 필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 드러내지 않아도, 오히려 ‘이래서 그랬을 거야’하고 맥락을 만들어주는 사람들. 수많은 의미와 가치가 손님들에 의해 발견되고 더해졌다.
그러나 모두가 얼스어스의 방향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블로그나 SNS에는 불편하다거나 얼스어스의 의도를 왜곡하는 글이 적히기도 했다.
“맨 처음에는 진짜 총알받이가 된 기분이었어요. 회사를 다닐 적에도 피드백은 많이 받았지만, 회사에선 정제된 형태로 오잖아요. 장사를 하면서는 남의 일기장에 가감 없이 적힌 걸 그대로 보는 것 같더라고요. 되게 생경하고 상처가 되기도 했어요.”
현희는 부정적인 피드백 가운데에서도 적용할 부분과 굽히지 않을 부분을 구분했다.
“저희가 만족시켜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기 때문에 그 손님과 우리가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못하고 있나’ 하는 의심은 잘 안 하는 거 같아요.”
필요한 피드백은 고치고, 그게 아니라면 매달리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뭐든지 척척 결정하며 낙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위기 앞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기는 코로나 시기에 닥쳐 왔다. 2019년 말부터 2022년 초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영업자들은 배달 없이는 장사를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별도의 포장 용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배달 서비스도 하지 않는 얼스어스의 입장에선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얼스어스의 서촌점이 문을 연 지 3일만에 코로나로 인한 무기한 영업 정지가 시작됐다.
현희는 어쩔 수 없이 배달 서비스를 시행하는 대신, ‘버티기’를 택했다.
수입이 없어 월세가 밀렸고, 직원들에겐 양해를 구하며 무급 휴가를 부탁해야 했다.
건물주들에게는 그냥 솔직히 말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쓰레기를 막 배출하면서 카페가 잘 되더라도,
그게 저를 행복하게 만들 순 없으니까요.
내가 행복해야 오래 할 수 있잖아요.
세상의 상황을 바꿀 수 없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했어요.
오히려 새로운 메뉴 개발에 박차를 가했죠.”
그렇게 디저트 라인업이 기존 두세 가지에서 네다섯 가지로 늘어났다. 신메뉴가 각광 받으며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출이 회복되자 현희는 가장 먼저 무급 휴가를 떠났던 직원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사실 현희는 위기 속에서 무작정 버티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끊어내야 할 타이밍과 기준 역시 명확했다.
얼스어스 서촌점이 문을 연 시기즈음, 당시 얼스어스는 부산에서도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희는 일주일에 날을 정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매장을 컨트롤 했다. 부산점은 규모가 꽤 컸음에도 제법 잘 굴러갔다. 코로나 시기였음에도 매출은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현희가 1년만에 이곳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매출이 아닌 다른 데 있었다.
“서울에서는 제가 스텝들과 붙어서 일하며 라포 형성이 잘 됐는데, 부산에서는 그게 어려웠어요.
스텝들과 제가 동화 되지 않으니까 일을 지속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에게 지속 가능성이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케미스트리를 뜻하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영역.
현희는 이 본능적 직관을 말로 설명하긴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를 잘 넘긴 2023년. 그는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간 얼스어스가 걸어온 카페의 길과는 조금 다른, 베이커리 중심의 ‘얼스케이크베이크샵’을 성수에 연 것이다. 그동안의 얼스어스는 손님과의 거리가 가깝고 구석 구석 주인장의 손이 타지 않은 곳이 없었다면, 얼스케이크베이크샵은 훨씬 더 큰 규모에 스텝과 손님간의 거리가 먼 공간으로 꾸몄다.
당시엔 ‘런던 베이글 뮤지엄’과 같은 규모 있는 베이커리샵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1년도 안 돼서 가게 문을 닫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케팅 측면에서 안일하게 생각한 지점이 있었다고 했다.
“얼스어스 연남점이나 서촌점, 부산점. 모두 주변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어요. 그런데도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보니까 제가 마케팅을 세심하게 할 생각을 못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큰 공간을 오픈 할 땐 좀 달랐어야 했는데, 이전 방식을 그대로 했던 거죠.”
현희는 이전 매장들을 오픈할 때처럼 홍보에 적극적인 힘을 쏟지 않았다. 가게 오픈 일주일 전 SNS에 오픈 예고 소식을 올린 게 전부였다.
“오픈 첫 날 직감 했어요. 이 정도 규모인 공간에 손님이 이 정도라면, 앞으론 더 어렵겠다.”
그렇게 1년도 채 되지 않아 현희는 그 공간을 스스로 접었다.
사업 7년차. 코로나도 극복한 그에게 찾아온 첫 실패였다.
그러나 그 실패가 얼스어스를 주저앉힐 명분이 되진 못했다. 그에겐 여전히 함께 걸어나갈 동료들이 있었으니.
Scene 03. Portfolio Closeup
작업물 클로즈업
얼스어스 대표 길현희
케이크 맛집으로 유명한 얼스어스
카페의 본질은 맛이다.
아무리 가치가 좋고 예쁜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맛이 없으면 누가 올까! 사실 손님들에게 얼스어스는 제로 웨이스트 카페보다 케익 맛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얼스어스의 ‘번거로운 포장법’
일회용 티슈는 손수건으로, 일회용 빨대는 세척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빨대로. 손님들은 얼스어스 디저트를 포장하기 위해 저마다의 다회용기를 챙겨 온다.
여러 온라인 강연 플랫폼에서 나눈 팁
콜로소, 배민클래스, 카카오 등 다양한 강연 플랫폼을 통해 얼스어스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 방법과 레시피를 나눴다.
창업 이래 처음 만든 스텝복 — 스카프
스텝복은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으면 얼스어스의 색을 단번에 보여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새 옷을 만드는 것 자체가 환경에 부담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동묘도 가보고, 빈티지 옷에 프린팅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직원들의 반대도 있었다(웃음).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최근 결정했다. 스카프로 하기로! 아직 아무데서도 스카프로 스텝복을 맞춘 곳은 못본 것 같다.
Scene 04. Ways of Working
일의 리듬을 만드는 법
얼스어스의 팀 문화
1) 채용시 중요한 건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
가게가 유명해지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현희가 팀원을 찾을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건 가치관이나 실력이 아니었다. 그가 중요시 보는 건 다름 아닌 개그 코드. 어떤 인터뷰는 이야기와 질문이 끊이지 않았지만, 어떤 인터뷰는 대화가 자꾸만 툭 툭 끊겼다.
“일하면서 서로 재밌으면 의견이 안 맞거나 상대가 잘 못해도 기다려줄 수 있어요. 친구라는 생각이 들면 서로를 한 번 더 이해하기도 하고요.”
2) 동기를 북돋는 칭찬 문화
그가 은연 중에 계속 이야기하던 프렌드 쉽은 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얼스어스는 1년에 한 번은 꼭 전 직원이 다같이 워크숍을 간다. 그때 꼭 하는 행사는 '칭찬 샤워'. 말 그대로 서로 돌아가며 한 사람에 대한 칭찬을 퍼부어주는 것이다. 꼭 워크숍을 통해서만 아니라 서로를 칭찬하며 동료애와 우정을 다지는 시간을 꼭 갖는다.
3) 공유는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레시피는 주로 현희가 만들지만 그외의 일들은 그의 친구이자 얼스어스 초창기부터 함께한 매니저와 함께 힘을 나눈다.
“레시피 외에 가게에서 뭔가 결정할 일이 생길 때, 저는 공유하는 일에 가장 신경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니저인 친구와 함께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공유 과정을 신경 써요.”
현장을 베이스로 일하며 구두로 논의되는 이야기 많은 만큼, 노션이나 단톡방 외에 오프라인에서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게시판도 설치했다. 이렇게 서로의 의견이 합치된 덕에 현희는 팀원들에게 아예 가게를 맡기고 최근 영국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얼스어스가 꿈꾸는 지속가능성
현희는 성장에 있어서 단호하고 명쾌했다. 매출. 한때는 내 속도로 가는 게 중요하다며 숫자와 거리를 둔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매출이 따라와줘야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직원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이 친구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직원이 저보다 부자인 것. 그게 목표예요."
그는 아이러니 하게도 매출을 많이 일으키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재미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자신의 재미를 좇고 추구할 때 손님들의 호응도 높아졌다.
그렇게 2026년 5월 한 달간, 얼스어스 서촌점에서 2023년 문을 닫았던 얼스케이크베이크 샵의 시즌 2를 파일럿으로 진행했다. 오전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딱 2시간. 얼스어스로는 생각도 못한 반찬맛 샌드위치와 함께.
얼스어스의 ‘번거로운 포장법’
일회용 티슈는 손수건으로, 일회용 빨대는 세척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빨대로.
손님들은 얼스어스 디저트를 포장하기 위해 저마다의 다회용기를 챙겨 온다.
창업 이래 처음 만든 스텝복 — 스카프
스텝복은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으면 얼스어스의 색을 단번에 보여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새 옷을 만드는 것 자체가 환경에 부담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동묘도 가보고, 빈티지 옷에 프린팅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직원들의 반대도 있었다(웃음).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최근 결정했다. 스카프로 하기로! 아직 아무데서도 스카프로 스텝복을 맞춘 곳은 못본 것 같다.
여러 온라인 강연 플랫폼에서 나눈 팁
콜로소, 배민클래스, 카카오 등 다양한 강연 플랫폼을 통해
얼스어스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 방법과 레시피를 나눴다.
Scene 04. Ways of Working
일의 리듬을 만드는 법
얼스어스의 팀 문화
1) 채용시 중요한 건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
가게가 유명해지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현희가 팀원을 찾을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건 가치관이나 실력이 아니었다. 그가 중요시 보는 건 다름 아닌 개그 코드. 어떤 인터뷰는 이야기와 질문이 끊이지 않았지만, 어떤 인터뷰는 대화가 자꾸만 툭 툭 끊겼다.
“일하면서 서로 재밌으면 의견이 안 맞거나 상대가 잘 못해도 기다려줄 수 있어요. 친구라는 생각이 들면 서로를 한 번 더 이해하기도 하고요.”
2) 동기를 북돋는 칭찬 문화
그가 은연 중에 계속 이야기하던 프렌드 쉽은 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얼스어스는 1년에 한 번은 꼭 전 직원이 다같이 워크숍을 간다. 그때 꼭 하는 행사는 '칭찬 샤워'. 말 그대로 서로 돌아가며 한 사람에 대한 칭찬을 퍼부어주는 것이다. 꼭 워크숍을 통해서만 아니라 서로를 칭찬하며 동료애와 우정을 다지는 시간을 꼭 갖는다.
3) 공유는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레시피는 주로 현희가 만들지만 그외의 일들은 그의 친구이자 얼스어스 초창기부터 함께한 매니저와 함께 힘을 나눈다.
“레시피 외에 가게에서 뭔가 결정할 일이 생길 때, 저는 공유하는 일에 가장 신경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니저인 친구와 함께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공유 과정을 신경 써요.”
현장을 베이스로 일하며 구두로 논의되는 이야기 많은 만큼, 노션이나 단톡방 외에 오프라인에서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게시판도 설치했다. 이렇게 서로의 의견이 합치된 덕에 현희는 팀원들에게 아예 가게를 맡기고 최근 영국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얼스어스가 꿈꾸는 지속가능성
현희는 성장에 있어서 단호하고 명쾌했다. 매출. 한때는 내 속도로 가는 게 중요하다며 숫자와 거리를 둔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매출이 따라와줘야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직원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이 친구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직원이 저보다 부자인 것. 그게 목표예요."
그는 아이러니 하게도 매출을 많이 일으키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재미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자신의 재미를 좇고 추구할 때 손님들의 호응도 높아졌다.
그렇게 2026년 5월 한 달간, 얼스어스 서촌점에서 2023년 문을 닫았던 얼스케이크베이크 샵의 시즌 2를 파일럿으로 진행했다. 오전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딱 2시간. 얼스어스로는 생각도 못한 반찬맛 샌드위치와 함께.
연남동과 서촌의 깊숙한 골목. 얼스어스는 10년째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 자리를 10년째 지켜왔다는 것은 단지 운이 좋았다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스어스는 먼 미래의 위대한 목표보다 매순간의 최선을 선택하며, 오늘의 심지를 곧추세웠다.
흘려 보낼 바람은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피할 수 없는 바람은 온몸으로 맞아 버티며 자기다움이라는 알맹이를 연마해냈다.
어떻게 그렇게 결정이 시원하고 빠른지, 그 감각적 비결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현희는 오래 고민했다.
그는 한참을 곱씹고 난 후 답했다.
“계속 질문하는 것 같아요. 꼭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아니더라도 시시때때로.
나 잘 살고 있는지. 내가 지키고 싶은 게 뭐였는지.”
끊임없는 질문과 성찰로 스스로를 점검하고, 어느 결정 앞에 자신을 두어야 하는지 아는 것. 그런 사람은 구태여 빨리 달리지 않아도 자신이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자신의 모든 선택이 목적이라는 일관된 방향 안에 있으므로.
대화의 말미에 현희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기다움은 단번에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결국 시간의 축적이 필요해요.
쌓인 선택이 있어야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거죠.”
__
AI 기술이 보편화 되면서 우리에겐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는데, 우리는 왜 더 불안하고 초조할까?
우리는 왜 자꾸만 나 자신을 잃는 것 같은 공허한 함정에 빠지는 걸까?
무엇이든 입력한 즉시 값이 도출되는 광속의 시대에,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지연하는 시간은 분명 독창적인 결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나라는 세계에 더 깊이 뛰어들 수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하지 않는 선택을 고민한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SIDE에선 의심 대신 응원을,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여러분의 스펙트럼이 펼쳐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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