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미션, 연고없는 거창에 집을 구해라 written by 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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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션, 연고없는 거창에 집을 구해라

지방 촬영의 가장 큰 난관은 연출이 아닌 예산과의 싸움입니다. 원하는 장면이 있어도 시나리오를 고쳐 써야 하고, ‘어떻게 잘 찍을까’보다 ‘이 돈으로 찍을 수 있을까’를 먼저 셈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주인공의 집을 구해야 하는 미션이 떨어졌지만,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선뜻 집을 내어줄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서울과 함양을 오가는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스태프의 체력이 버틸 수 없어, 4일이라는 한정된 기간 내에 모든 분량을 소화하려면 거창에서 집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방법은 진심을 담아 정중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대여를 부탁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거창 시내의 모든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고 당근마켓 게시글마다 메시지를 남기며 하루 넘게 문을 두드린 끝에, 마침내 두 곳에서 “일단 내려와서 보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숨이 턱 막히는 폭염 속에서 찾아간 첫 번째 집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잠시 후 찾아오신 사장님은 몸이 불편한 친구분과 함께 살고 계셨습니다. 집을 둘러보는 내내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연민이 아닌, 생면부지의 외지인에게 조건 없이 다정한 호의를 베풀어준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었습니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만큼의 마음을 내어준 적이 있었던가.’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외곽의 작은 빌라였던 두 번째 집에서는 사장님을 만나자마자 가방 끈이 툭 끊어지며 짐이 바닥으로 쏟아졌습니다. 땀에 젖은 몰골로 짐을 줍는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사장님은 원래 보여주려던 방 외에도 공실들을 하나하나 내어 보여주셨습니다. 답사를 마친 뒤에는 시내까지 차로 태워다 주시며 “잘될 거예요, 영화 꼭 완성하세요”라는 따뜻한 응원을 건네주셨습니다.


그날 깨달았습니다. 영화는 단순히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정한 호의로 완성된다는 것을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커다랗게 빚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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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지사 고속버스 회장님을 만나다(?)
다음으로는 버스 씬이 필요했습니다. 버스에서 촬영하려면 버추얼 촬영이라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은… 천문학적입니다. 저희 같은 독립영화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빠르게 실사 촬영으로 방향을 잡아야 했습니다.


근데 또 여기서 저의 이상한 뇌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버스를 빌리려면 버스 기사님이 아니라 고속버스 사장님을 만나면 되는 거 아닌가? 도대체 이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촬영 장소로 섭외한 곳에서 친해진 어르신들께 무턱대고 여쭤봤습니다.


“혹시 이 지역에서 버스 가지고 계신 사장님 번호 아세요?”

정말 재밌는 건요.


“응, 알지.”

…였습니다.


순간 제 머리 위로 물음표가 한 만 개쯤 떠다녔습니다. 이게… 왜 되는 거지? 그렇게 저는 갑자기 경남지사 고속버스 회장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오전 9시까지 사무실로 오라고 하셔서 옷도 괜히 깨끗하게 빨아 입고,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회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사장님께 제 영화 이야기부터, 왜 버스가 필요한지, 어떤 장면을 찍고 싶은지 열심히 피칭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제 이야기가 아니라 사장님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더라고요. 한 두 시간은 훌쩍 지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장님께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안 버리고 세워둔 버스 두 대 있는데, 마음껏 써.”


…네?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게… 된다고? 저는 그 자리에서 거의 반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사장님. 저 함양의 딸 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영화 잘 만들어서 함양의 딸로 성장하겠습니다.”

(참고로 제 고향은 평택입니다.)


그렇게 저는 버스를 얻었습니다. 사장님과 함께 촬영할 버스를 둘러보고, 고속버스에서 일하시는 어르신들께도 한 분 한 분 깍듯이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상하게 이번 영화는 계속 어떤 마법같은 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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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씹으며 생각한 것들
삼십 대 중반. 여전히 꿈을 향해 철없이 살고 있는 저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요즘은 제 꿈을 위해 포기하는 것들이 너무 아쉽습니다. 미래에 대한 대책도 없고, 오로지 영화 하나만 보고 돌진한 저는 지금 애인도 없고, 돈도 없고, 영화를 만들수록 점점 더 구질구질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지망생인 저의 이 철없는 도전은 어떤 날은 너무 행복하고, 또 어떤 날은 너무 불행합니다. 꿈을 꾸는 게 직업인 저는,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 새삼 느낍니다. 친구들도 잘 만나지 못합니다. 커피 한 잔이라도 아껴야 스태프들에게 밥 한 끼 더 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적어도 인간으로서는 괜찮은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영화를 만들 때면 인간으로서의 가장 부족한 제 모습을 자꾸 마주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는 촬영지 답사 때문에 채석장과 산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녹초가 되어 서울 집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아빠 생일이었습니다. 꿈이 뭐라고,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챙기지 못하고 사는 제가 너무 한심하고 초라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다음 날 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단단히 삐져 계셨습니다.


“돼지갈비 사줄게.”


겨우 그 한마디로 아빠의 마음을 조금 풀어드렸지만, 그날만큼은 이 신기루 같은 영화 만드는 일을 마음껏 원망해 보고 싶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울었습니다. 될 듯하면서도 되지 않는 준비들. 계속해서 생기는 변수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현실. 가벼운 주머니.


‘아, 서른다섯의 고민이 정말 이게 맞나.’


그런 현타가 한참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요. 저는 또 일어났습니다. 대충 밥을 먹고, 집중도 잘되지 않는 머리로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또 시나리오를 펼쳤습니다. 매섭게 들여다봤습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으니까요.


꿈이라는 게 참 웃깁니다. 가끔은 너무 초라하고, 너무 구질구질해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다가도, 또 다음 날이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다음 레터에서는 ’이게 된다고?’를 지나 ‘이게 됐어요!’라는 이야기를 꼭 들려드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눅눅한 꿈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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